발해는 고구려의 부활이었을까? 사라진 역사, 잊힌 정체성

발해는 우리 역사 속에서 자주 잊히거나 간과되는 국가입니다. 하지만 발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독립 왕국이 아니라 고구려의 후계국이라는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각지에서 고구려 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대조영(대주원)이 이끌던 세력이 당나라의 견제를 뚫고 발해를 건국하게 됩니다. 특히 발해는 왕족과 지배층의 다수가 고구려 출신이었으며, 스스로를 고구려의 계승국이라고 자처했습니다. 그렇다면 발해는 단순한 신생 왕국이 아니라, 고구려를 부활시키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발해의 고구려 계승 정체성은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발해의 정치·행정 체계는 고구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수도였던 상경성(上京城)은 고구려 수도인 평양성을 본떠 설계되었으며, 주요 행정 제도도 고구려식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둘째, 발해인의 생활 방식과 문화는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예를 들어, 발해에서 사용된 토기와 벽화는 고구려 양식과 매우 유사하며, 특히 발해의 불교 문화도 고구려의 영향을 짙게 받고 있었습니다. 셋째, 발해 멸망 후, 대규모 발해 유민이 고려로 이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는 왕건이 건국할 때부터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국가적 정체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발해 유민들은 고려를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려는 발해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까요? 발해인들이 대거 고려로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역사서에는 발해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고려가 스스로를 고구려 계승국으로 내세우면서도, 발해의 역사까지 적극적으로 계승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발해 멸망 당시 발해 지배층이 고려에 유입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일반 백성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고려 왕실에서는 발해의 역사를 고려 정통 역사로 편입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연구 주제는 발해가 고구려를 어떻게 계승했는지를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발해의 정체성을 연구함으로써, 단순히 고구려 이후에 등장한 또 다른 국가가 아니라, 고구려의 부흥을 꿈꿨던 나라로서의 발해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큐니버시티 연구원 여러분, 발해의 고구려 정체성 계승에 대해 연구하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출간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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